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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미국 서부 여행] Los Angeles - 1
    여행/2017 2017. 10. 1. 12:44

    블로그를 방치한 지 꽤 되었다. 그나마 매년 하던 영화, 음악 연말 결산도 2년을 쉬었고... (사실 두 번 다 써 놓긴 거의 다 써 놓고 일부 형식 상의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 여행을 다녀온 친구 김씨가 여행기를 세세하게 블로그에 포스팅한 걸 보고, 나도 이번 휴가부터는 기록을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결혼 후 여행을 꽤나 많이 다녔는데 기록을 남겨두지 않으니 돌이켜봤을 때 많은 것이 기억나지 않더라.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이번 부터는 포스팅을 해둔다. 또 마무리를 못하는 건 아니겠지...


    17년 휴가지를 정하기 위해 연초부터 고민을 했다. 일단 1년에 한번 떠나는 장기 여행인만큼 (그래봐야 일주일 남짓이지만) 언제든 갈 수 있는 가까운 나라는 선택지에서 제하고, 지금까지 가보았던 곳들과 다르면서도 한번쯤 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들을 추리다보니 북유럽, 그리고 미국이 남았다. 하지만 조금 더 알아보니 북유럽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오로라 구경은 휴가 예정 기간인 여름에는 좀 어렵다고하여, 최종적으로 미국으로 행선지를 정하게 됐다.

    하지만 미국은 너무 큰 나라고, 또 하나의 선택의 갈림길, 동부 / 서부가 남아있었다. 두 지역 모두 매력적인 곳이다보니 결정장애가 심하게 와서 미국에서 살다 오거나 여행 경험이 있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두루 들어보았는데, 의외로 열에 여덟 정도의 높은 비중으로 여행 기분을 내기에는 상대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서부가 더 나을 거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해서 서부로 결정!

    그렇게 해서 평생 근처도 가보지 못했지만, 내 삶에 있어 한국 다음으로 영향을 많이 준 나라를 가게 되었다. 늘 음악, 영화, 음식, 인터넷을 통해 너무도 친숙하게 접했던 미국의 문화를 직접 피부로 느껴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설렜다. 특히 힙합팬으로서 'westside' 땅을 밟아본다는 게 은근 각별한 의미였다...


    항공권 / 숙박은 너댓달 정도 전에 예약을 마쳐두었다. 그 얼마 후 예상되었던 인센티브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같은 회사를 다니는 공동운명체인 우리 부부는 재정 상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 여행을 가는 게 맞나 막판에 고민이 되었으나... 결국 여행의 날은 다가왔고 이왕 가기로 한 것,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기로 했다.



    공항 출국층은 밟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다. 우리는 대한항공 인천 - LA 직항인 KE017 을 탔다. 출발 시간대가 딱 좋았다.

    태평양을 가로질러 12시간 동안 비행했다. 그 동안 한번의 낮과 한번의 밤이 지나갔고, 다시 낮이 되었다.

    이륙하고 여섯시간 정도는 자다깨다를 반복했는데, 그 후로는 통 잠이 오지 않아 기내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는 그럭저럭 재미있는 영화였으나, 이것 때문에 이후 LA에서 시차적응으로 고생을 하게 된다...


    Los Angeles!


    그리고 미국에 도착! LAX는 굉장히 큰 공항이었다. 묵기로 한 Airbnb 숙소가 있는 Echo Park 지역으로 우버를 타고 가기로 했다. 여행 계획 시 맨 처음엔 LA에선 차량 렌트를 해서 돌아다닐까 했었는데, 주차요금이 살인적이란 얘길 듣고 (+ 낮술을 위하여) 차라리 편하게 우버만 타고 돌아다니겠다고 마음 먹은 상태였다.


    Downtown 이 보인다.


    워낙 IT 관련 서비스 얼리 어답터인 나는 한국에서도 우버 출시 직후 부터 몇번 사용을 했기에 미국 여행 내내 익숙하게 이용했다. 심지어 미국에서의 첫 우버는 정겹게도 현대 아반떼였다... 쭉 이용하다보니 우버는 현지에서 가성비가 좋은 축에 드는 한국 / 일본차가 대부분이었다.



    숙소 도착! 에코 파크 근처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아담한 집이었다. 12시쯤 도착했는데, 호스트가 일찍 체크인을 허락해주어 다행이었다.




    시차 때문에 매우 피곤하였다. 아내(이하 '고씨')는 침대를 보자마자 누웠는데,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사실 고씨는 여행 3일전에 장염이 걸려 컨디션이 매우 나쁜 상태였다. (먹방이 여행의 주 목적인 우리 부부에겐 엄청난 걱정 요인 중 하나였다)

    그래도 첫날부터 쓰러져서 하루를 보낼 순 없었기에 30분 정도 후에 깨워 밖으로 나왔다. 6:30에 있을 다저스 경기를 보기까지 남는 시간은 다운타운 구경을 하기로 했다.



    다운타운 도착! 얼마전까지 즐겨했던 GTA5 게임맵과 너무나도 똑같은 다운타운의 구조가 친숙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우리가 간 날은 퍼싱 공원이 매표소 부스와 가림막을 동해 폐쇄가 되어 있어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나중에 가림막 틈으로 보니 퀴어 축제가 진행중인 것 같았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분위기가 좋기로 유명하다는 루프탑 레스토랑 Perch 로 가보았는데, 예약제로 운영된다며 혹시 빈 자리가 나면 연락주겠다는 말에 번호만 알려주고 다시 나왔다. 결국 다시 가진 않았지만 음악 + 분위기가 매우 fancy 했던 걸로 기억한다. 다들 매우 신경써서 입고 있었고, 심지어 엘레베이터를 안내하는 남녀 종업원이 내 신발을 보고 아디다스 NMD 아니냐며 처음보는 디자인 + 색이라고 칭찬 세례를 했다.


    약간 정처 없이 걷다가 근처에서 구글 평점이 제일 높은 멕시칸 Guisados 에 들러보았다. 미국에서 처음 해보는 식사(+주문)라 다소 긴장했다.

    타코 종류가 6개 정도 있었는데 뭐가 뭔지 몰라 샘플러로 주문했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타코가 6개가 나왔다. 워낙 평소에도 타코를 좋아하고, 거기다 미국에서의 멕시칸은 엄청나게 맛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기대를 잔뜩했는데 의외로 생각보다 아쉬웠다. 타코에 들어간 속은 맛있었지만 소프트 타코가 마치 한국 장떡같이 두껍고 심지어 맛도 그 맛이었다... 아마도 가게에서 직접 반죽하여 만든 것 같았는데, 공산품의 그 맛이 그리웠다. 현지인들 평점은 여러 애플리케이션에서 고루 높은 걸 보니 오히려 약간 건강식 쪽으로 어필을 하고 있는 곳인가 싶었다. 미국에 왔는데 건강식을 먹고 싶진 않았다!


    결국 다른 곳으로 가자는 합의를 하고 배가 완전히 차지는 않은 상태로 가게에서 나왔다. 좀 걷다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이 있어, 우리도 10분 정도 기다린 후에 자리에 앉았다. Blu Jam Cafe 라는 곳이었는데, 전형적인 아메리칸 레스토랑이었다. 지금 찾아보니 지점이 대여섯 군데 있나 보다. (무려 도쿄에도 생긴 듯)



    점원에게 이 곳의 시그니처 메뉴가 뭔지 물어봤더니 추천해준 Crunch French Toast 와 Mushroom and  Vegetable Soup 을 주문했다. 토스트는 바삭한 프렌치토스트에 바나나, 코코넛, 민트 등이 올라간 메뉴였는데 아주 맛있었고, 수프도 진득하니 좋았다.



    다저스 경기까지는 아직도 2시간 남짓 남아, Walt Disney Concert Hall 까지 쭉 걸어가며 다운타운 눈요기를 하기로 했다. 고층 빌딩이 굉장히 많았는데, 듣던대로 걸어다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홈리스가 꽤 많이 보였다.



    지도 상으로 볼 땐 디즈니 홀까지 쭉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 굉장한 언덕배기를 지나야 했다.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고씨를 위해 10분에 한번씩 벤치에서 쉬었다.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도착! 듣던대로 멋진 건물이었다. 차가우면서도 즐거운 느낌의 건축물. 약간 DDP가 연상되기도 했다. 다만 고씨의 "그런데 여기서 뭐 하려고?" 라는 질문에는 크게 할 말이 없었다... 공연을 보러 온 것도 아니었으니 앞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끝. 사실 디즈니 홀까지 걸어오면서 좀 여유있게 주변도 둘러보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려 했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크게 즐기지 못했던 것. 나조차도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매우 졸린 상태였기에, 일단 어디 공원 같은 곳이라도 가자 해서 바로 옆 블럭에 있는 Grand Park 에 갔다.



    규모가 아주 크진 않지만 LA 특유의 열대 나무도 많고, 분수를 중심으로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좋은 공원이었다. 물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보면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생각을 했다.



    하늘이 정말 파란 날이었다. 분수 앞 테이블에 앉아 잠시 사람 구경을 했다. 고씨가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서 꾸벅꾸벅 졸면서 30분 정도를 보냈다. 다저 스타디움으로 가야 할 시간에 맞춘 알람소리를 듣고 깼다. Lyft 를 타고 가는 20여분 동안도 계속 졸았다. "어느 구역에서 내려줄까?" 하는 기사분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려보니 다저 스타디움이었고, 어딘진 모르겠지만 여기면 됐다고 하고 내렸다.



    신나게 경기장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잠이 기분 좋게 확 달아났다. 예상은 했지만 대부분의 팬들이 파란 아이템은 최소 하나씩 몸에 두르고 있어서, 새카맣게 입고온 게 약간 민망했다. 스타디움 안에 있는 팬 샵에서 뉴 에라 캡 하나를 사서 고씨에게 씌워주었다.



    Stubhub을 통해 미리 예약해두었던 Loge VIP 좌석은 경기 보기에 아주 최적화되어 있었다. 탁 트인 경기장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일요일 아침 TV에서만 보던 그 구장에 내가 와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가슴이 설렜다. 펜스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 저 멀리 보이는 산과 야자나무들이 '이곳이 바로 LA'라고 노래해주는 느낌이었다.



    명물 Dodgerdog 도 먹어봤다! 미처 머스타드와 양파를 넣지 못해 좀 밋밋하긴 했지만... 짭짤하니 맛있었다. 맥주와 먹기 딱이었다. 그나저나 미국은 야구장에서 파는 그냥 생맥조차도 정말 제대로 내린 IPA였다.


    하지만 중요한 밀워키와의 경기는... 그야말로 졸전이었다. 안타 한 번 나오지 않는 밋밋한 이닝이 이어졌다. 그리고 시차 적응을 견디지 못한 우리는... 심지어 꾸벅꾸벅 졸고야 말았다! 특히 고씨는 경기 중반부터 거의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내가 너무 무리해서 경기를 보자고 했나 좀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다.



    그 와중에 찍은 관중 파도타기. 다시 봐도 다저 스타디움은 정말 웅장하다.



    해질녘의 경기장.


    결론적으로 경기는 다저스의 0-3 패배였다. 그래도 돌아보면 나름 머리에 계속 떠오르는, 재미있는 경험이었지 싶다. 미국에서의 첫날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댓글

sic itur ad astra.